터키 이스탄불 - 2 아야 소피아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터키
- 2018. 9. 3. 23:38
동로마제국과 콘스탄티노플 천도
진시황을 비롯해 중국의 황제들이 만리장성을 지은 이유는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함이라고 알려져 있다. 기마민족이며 정착 생활을 하지 않는 흉노족, 역사적으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들 흉노족이 훈족과 동일 민족이라는 설이 있다. 훈족의 이동은 유럽 역사에 큰 변화를 가져왔는데 이들의 위협적인 이동으로 게르만족이 서쪽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고, 게르만족은 지금의 로마를 비롯해 프랑스, 스페인 등까지도 이동하게 된다.
로마제국이 막강한 힘을 가졌을 때는 괜찮았지만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300년 경의 로마는 게르만족의 침입을 버틸 수 없었고 로마는 계속된 침략과 약탈에 더 이상 수도로서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결국 330년 로마를 버리고 비잔티움으로 수도로 옮기며 본인의 이름을 따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다시 명명하게 되었다. (지금의 이스탄불이라는 이름은 1452년 오스만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면서 이곳으로 제국의 수도를 옮기며 붙여지게 되었다)
수도를 옮기는 것에 반대하고 로마에 남은 귀족과 기술들에 의해 콘스탄티누스의 동생을 로마의 황제로 내세우면서 결국 로마 제국은 콘스탄티노플 중심의 동로마와 로마 중심의 서로마로 나뉘게 된다. (동로마제국은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뒤 수도의 옛 이름인 비잔티움을 따 비잔틴제국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 역시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로 나누어지게 되고 성 소피아 성당은 동방교회를 대표하는 성당으로서 자리잡게 된다.
아야 소피아의 건립
성 소피아 대성당은 콘스탄티우스 황제 (로마황제로서 크리스트교를 첫 인정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아들)에 의해 360년 지어졌으며, 이 때 성스러운 지혜라는 의미의 Haghia Sofya (터키어로는 Aya Sofya)라는 이름을 얻었다.
많은 성당들이 자연재해와 화재, 전쟁으로 훼손되고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듯이 성 소피아 대성당 역시 오래된 역사 만큼이나 지진, 폭동, 화재 등을 거치면서 재건이 반복되었다. 대성당의 초기 모습은 일반적인 초기 성당의 모습과 같은 바실리카 양식이었으나 소실된 이후 537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현재의 모습과 같은 돔 형식의 건물로 지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짧은 공사 기간, 부족한 건축기술, 잦은 지진으로 이 돔은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의 돔은 오스만제국의 위대한 건축가인 시난에 의해 보수되어 현재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시난은 중앙의 거대한 돔의 구조를 지지할 수 있도록 두 개의 반 돔을 받치게 하였고 바깥쪽에는 부벽을 쌓아 구조적 안정성을 꾀했다.
또한 내부에는 각기 다른 기둥들이 미적 아름다움과 함께 건물 전체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다. 아야 소피아의 내부 기둥들은 자세히 보면 색깔이 조금씩 다른데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가져온 녹색 기둥, 바르베크의 아폴론 신전에서 가져온 붉은 기둥 등 오스만 제국의 각지에서 가져온 석재를 다시 사용했기 때문이다.
성당에서 모스크로, 그리고 다시 박물관으로
이스탄불 지역이 지리적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잊는 요충지이기에 많은 나라들이 탐내는 곳이었던만큼 전쟁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이 강력한 왕권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잘 버티면서 약 900년간 동방 교회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동방교회로서 아야 소피아에는 이 때의 벽화와 모자이크들이 아직도 아름다움을 유지한 채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동로마제국은 12세기부터 서서히 쇠약해지기 시작하면서 1204년에는 십자군에 의해 점령되면서 라틴왕국이 들어섰으며 성 소피아 성당 역시 동방교회에서 카톨릭성당으로 변화된다. 위 그림에서 보이는 회손된 벽은 오스만에 의해 훼손된 것이 아니라 카톨릭 십자군에 의해 훼손된 것이라는 참 아이러니하다.
1261년 다시 비잔틴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탈환화면서 다시 동방교회로 바뀌었고 오스만제국에 의해 멸명 전까지 동방교회로서 유지된다.
1452년 오스만제국의 술탄 메흐멧2세는 7주간의 콘스탄티노플 공략 끝에 함락시키며, 성 소피아 성당은 이제 교회로서의 역할을 끝내고 이슬람 사원으로 변화되게 된다. 이슬람 사원으로 변화되면서 성당의 구조에도 변화가 생기는데 좀더 안정적인 돔으로 보완하고, 바깥쪽에는 4개의 미나레(첨탑)이 생기고, 미흐랍이라는 메카를 향한 문이 생기게 된다. 또한 내부의 여러 성화가 그려져 있던 벽화들은 회벽이 씌워지며 이슬람사원 특유의 기하학적 문양이 그려지게 되었다.
1923년 오스만제국 멸명과 함께 터키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성소피아 사원은 박물관으로 다시 변경되었으며, 내부에서는 기독교든 이슬람이든 어떤 종교적 행위도 못하게 금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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