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포츠담의 상수시 궁전 - 프리드리히 대제의 별궁 Sanssouci

포츠담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처음 거처를 마련하고 소규모 수비대를 주둔시키면서 왕궁으로서 첫 시작을 갖게 되며, 아들인 프리드리히 대제시절에 본격적으로 개발되었다. 상수시 궁전을 비롯해 신궁전, 오란게리에 궁전이 있으며, 상수시 궁전 단지에서 조금만 더 가면 포츠담선언의 장소인 체칠리엔호프 궁전도 있다. 


상수시 궁전

상수시 궁전 Schloss Sanssouci는 프리드리히 대제가 지은 별궁으로서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과 정원을 본따 만들어 프로이센의 베르사유라 불리기도 했다.


상수시 궁전 전경 (이미지출처: lv.wikipedia.org)


상수시는 프랑스어로 근심없는 이라는 뜻으로 이곳에서 주로 문인들과 토론하고, 연주회를 개최하면서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프리드리히 대제의 특성이 잘 반영된 만큼 이 궁전을 알기위해서는 프리드리히 대제의 삶을 간단히 이해해 보는 게 좋다. 


 

프리드리히 대제

프리드리히 대제는 프리드리히 2세로서 30년 전쟁에서 프랑스를 격파시켰던 빌헬름 1세의 아들이다. 아버지로부터 군사학을 배우고 군사훈련도 받는 등 남성적인 특징도 잘 갖췄지만 어려서부터 프랑스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받아 프랑스 문화에 심취하고, 음악, 시, 문학 등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아버지 빌헬름1세는 폭군의 전형으로 가부장적이고 가족에게 폭행도 서슴치 않았다. 또한 아들이 정략적 결혼을 무시하고 연애를 하자 아들과 애인을 감금하고 아들이 보는 앞에 애인을 사형시키기까지 하였다. 이 충격으로 프리드리히 대제는 연애와는 거리를 두게 되고, 왕위를 계승하고 공식적으로 왕비를 맞이한 뒤에도 일절 관계를 맺지 않았으며 나중에 왕위 역시 조카에게 물려주었다. 

상수시 궁전에도 시중드는 시종은 모두 젊은 남성으로만 뽑았으며, 문학가들도 모두 남성만을 초청하여 얘기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카사노바도 그의 자서전에 프리드리히 대제가 자신의 외모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어쨌든 프리드리히 대제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함께 가진 성향은 독일을 당시 최강의 군사강국으로 만든 동시에 베를린을 화려하게 건설하였으며, 사상과 종교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당시 카톨릭과 개신교 간의 갈등을 피해 유능한 인재들이 프로이센으로 찾아와 과학발전과 함께 문학, 예술의 발전도 가져왔다. 

 


상수시 궁전은 바로크양식의 전형인 베르사유궁전과는 달리 좀더 여성적 특징이 보이는 로코코양식의 궁전이다. 공사를 맡은 건축가는 크노벨스도르프인데 그는 대제가 그린 스케치에 따라 궁전을 지었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여기저기 한편으로는 소박함이 다른한편으로는 화려함이 공존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상수시 궁전의 내부 모습 (이미지출처: Urlaubsguru)


궁전의 뒤쪽으로는 두 개의 주랑이 반원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로마 베드로 광장에 있는 Colonnades를 흉내낸 것이라고 한다. 또한 궁전 앞에는 계단식으로된 6개의 포도밭이 눈길을 끈다. 


프리드리히 대제는 노년에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상수시 궁전에서 사람들을 멀리하며 오직 애견 그레이하운드와 지냈는데 유언 역시 애견들 곁에 묻어달라는 것이었다. 프리드리히 대제의 시신은 2차 세계대전 동안 여기저기 전전하다가 독일 통일 후인 1991년에 상수시 궁전 마당으로 옮겨져 개들과 함께 묻혔다고 한다. 대제의 무덤에는 여기저기 감자가 보이는데, 독일에 처음 감자를 보급해 식량문제를 해결해 준 것에 감사 의미로 국민들이 갖다둔다고 한다. 


상수시 궁전의 정원 포도밭과 프리드리히 대제의 무덤 (이미지출처: thousand wonders, LightandLife)



오란게리에 궁전

상수시 궁전 옆에는 오란게리에 궁전이 있는데 프리드리히 빌헴름 4세 때 지어졌다. 원래는 이 일대에 개선로를 장식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정치적 불안으로 결국 궁전만 지어졌다. 로코코 양식의 화려한 궁전은 대칭되는 두개의 탑이 특징적이며, 내부에는 르네상스 회화 50점과 각종 벽, 기둥 장식과 조각들을 볼  수 있다. 


오란게리에 궁전의 전경 (이미지출처: LightandLife, thousand wonders by sarah)



신궁전

상수시 궁전 앞 정원을 나와 우측으로 가면 신궁전이 나온다. 상수시 궁전이 지어진 후 20년이 지나 7년 전쟁의 승리 기념으로 다시 궁전을 짓겠되었는데 좀더 오래된 구궁전인 상수시 궁전과 비교해서 신궁전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신궁전의 전경 (이미지출처: GetYourGuide)


 

7년 전쟁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가의 왕위계승전쟁에서 프로이센에게 패배해 빼앗긴 독일 동부지역을 되찾기 위해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간 벌인 전쟁이다. 오스트리아는 프랑스, 스웨덴, 러시아, 프로이센은 영국과 연합해서 전쟁을 했으며, 프로이센-영국 연합이 승리하였다. 전쟁의 결과,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간에 영토 변경은 별로 없었으나 프랑스는 인도에서 철수, 캐나다를 영국에 넘겨주는 등 식민지의 많은 부분을 영국에 넘겨주는 피해를 입었다. 

 

신궁전 역시 로코코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상수시 궁전보다는 훨씬 큰 규모로 지어졌다. 화려한 조개의 방을 비롯해, 200개 이상의 방을 만들었으며, 고대 사원, 우정의 사원, 용전시관 등을 공원에 건설하였다. 


신궁전의 내부 모습 (이미지출처: Fotocommunity)



신궁전의 뒤쪽으로도 반원형의 주랑이 있는 화려한 건축물을 볼 수 있다. 현재는 포츠담 대학교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포츠담 대학교로 사용되고 있는 주랑 (이미지출처: Wikipedia)



샤를로텐호프 궁전

신궁전의 오른쪽에 있는 샤를로텐호프 궁전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에 의해 건설되었고, 신고전주의 양식을 적용, 아이보리색의 벽면에 가운데 그리스식 기둥을 가진 모습을 보여준다. 


샤를로텐호프 궁전의 전경 (이미지출처: thousand wonders by Ben)



체칠리엔호프궁전 Cecilienhof Palace

상수시 궁전 단지에 있지는 않지만 포츠담에는 우리에게 매우 의미있는 궁전이 있다. 바로 체칠리엔호프 궁전이다. 상수시 궁전에서 북동쪽으로 10분 정도만 가면 나오는 이 궁전은 2차세계대전 종결 직전에 미국, 영국, 소련의 수뇌부들이 모여 일본의 절대적인 항목을 요구한 포츠담선언을 발표한 곳이다. 이 요구를 거부한 일본은 원자폭탄 공격을 받고 나서야 항복을 하게 된다. 


체칠리엔호프 궁전 모습 (이미지출처: visitBerli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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