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 - 2 슈테판 대성당 St. Stephen's Cathedral

슈테판 성당은 링슈트라세의 한 가운데 있는 빈의 중심이자 랜드마크다. 1137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재건, 확장 등을 거치면서 남쪽탑은 15세기경에 완성되었고, 현재의 모습은 1831년에 완성되었다. 


슈테판 대성당의 거대한 모습은 화면에 꽉 차게 나오게 힘들게 한다.


성당의 정면은 측면의 고딕양식과 달리 로마네스크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양쪽으로 두개의 탑을 갖고 있다. 이 두 개의 탑은 이교도의 탑이라는 별칭이 붙여있는데 그만큼 특이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면은 로마네스크, 측면은 고딕양식정면은 확실히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정면의 왼쪽으로 가면 쇠막대기 2개가 벽에 박혀 있고 둥그런 원 모양이 세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둥근 원은 당시 빵 한덩어리의 표준 사이즈로서 크기에 대한 분쟁이 있으면 이 걸로 판단했다고 한다. 2개의 쇠막대기는 각기 78cm, 89cm로서 옷감의 길이에 분쟁이 생기면 이걸로 판단했다고 한다. 


쌍탑이 있는 성당의 정면쪽보다는 남쪽 익랑쪽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남쪽에 익랑의 탑은 136m로서 2차세계대전 공습으로 인한 화재로 검게 그을린 벽이 성당을 더욱 독특하게 보이게 한다. 당시 연합군은 대성당에 직접 폭격하지는 않았지만 인근의 지역의 화재가 번져 성당까지 불이 났으며, 전쟁이 끝난 뒤에 시민들이 당시 화재 때의 성당 잔해를 집에 보관하고 있다가 가져나와 다시 복구를 하게 되었다. 


남쪽 익랑의 높게 솟은 탑북쪽 익랑의 종탑


성당의 북쪽 익랑 탑은 종탑으로 남쪽 익랑 탑과 달리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종탑 전망대에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종인 품메린 Pummerin (큰 종이라는 뜻)이 있다. 1683년 오스만제국의 빈 2차 공격 때 갑자기 퇴각하며 버리고 간 대포들을 녹여 만들었다고 한다. 전망대에 올라가면 빈 구시가지의 멋진 전경을 볼 수 있으며, 대성당의 지붕에 있는 기하학적 문양의 타일을 볼 수 있다. 모두 10가지색으로 되어 있고, 타일 한개의 무개가 2.5kg으로 모두 23만개의 타일로 구성되어 있다. 


거대한 폼메린대성당의 독특한 타일 지붕


성당 내부에는 눈물을 흘린 푀츄의 성모 그림이 유명하다. 이 그림은 원래 17세때부터 헝가리의 푀츄에 있던 것을 옮긴 것인데, 당시 그림 속의 성모 눈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목격되었는데 이로 인해 어려운 질병을 낫게 해준다는 소문이 퍼졌다고 한다. 당시 눈물을 조사했을 때 실제 사람의 눈물과 동일한 성분이었다고 전해진다. 


푀츄의 성모 재단초기 중세 그림의 특징이 잘 나타나있다


남쪽 익랑 탑쪽에는 하인들의 성모상이 유명한데, 원래 어떤 백작부인이 소유하고 있는 조각상이라고 한다. 워낙 성격이 괴팍한 백작부인이 어느날 비싼 진주목걸이가 없어진 것을 알고서 하인 중 한 여인을 도둑으로 몰았다고 한다. 그 여인은 감옥으로 끌려갈 찰라에 이 성모조각상 앞으로 가 눈물을 흘리며 기도드렸다는데, 이후 경찰이 자세히 조사해서 그 여인이 아닌 다른 청년이 훔쳐간 것을 알아냈다. 백작부인의 기증으로 슈테판대성당으로 옮겨졌으며 하인들의 성모라는 이름으로 주로 가난한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한다. 


하인들의 성모상치통의 그리스도


치통의 그리스도 역시 잘 알려진 조각상이다. 원래 이름은 '십자가상의 그리스도'로 성당 인근의 공동묘지에 조각되어 있었다. 공동묘지를 찾는 사람들이 이 조각상에 화환을 걸어두는 경우가 많았는데 우연히 이 화환이 기울여 놓여있어 그리스도의 얼굴이 우습게 보였나 보다. 지나가는 청년 3명이 이 모습을 보고 우리 주님께서 이가 아프신 모양이야 라고 조소했다고 한다. 그 뒤부터 이 청년들은 극심한 치통을 겪었고, 의사를 찾아가도 소용없었다고 한다. 결국 다시 이곳으로 와 엎드려 잘못을 뉘우친 뒤에야 치통이 말끔하게 나았다고 한다. 


중앙 재단은 검은 대리석으로 된 화려한 로코코 양식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성당의 이름과 관련된 성 슈테판이 돌에 맞아 순교를 당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뒤쪽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는 2차 세계대전때 성직자들이 지하 카타콤에 숨겨두었다가 전후 다시 달았다고 한다. 



성당의 내부는 대부분 안톤 필그림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그는 모습을 오르간 좌대 아래에 볼 수 있다. 좌대 아래에는 원래 매우 정교한 조각이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필그림의 지시를 받은 동료석공들이 너무 세밀한 조각은 오르간을 받치기 힘들다고 조소했고 이에 화난 필그림이 하기 싫으면 자기가 하겠다면 자기 얼굴 모습을 조각해 놓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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