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프라하 3 - 구시가지 광장 주변

구시가지 광장은 체코 프라하 관광의 핵심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역사적 유물들이 늘어서 있다. 또한 중세 분위기의 주택들이 골목골목 늘어서 있어 관광객이 없는 조용한 시간을 걷는다면 중세 시대로 돌아간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구시가지 광장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 (이미지출처: VideoBlocks)



광장의 중심부에 거대한 얀 후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얀 후스 사망 500주년을 기념해서 1915년에 제작되었으며, 동상의 기단 아래쪽에는 서로를 사랑하라, 모든 이들 앞에서 진실을 부정하지 마라라고 얀 후스가 감옥에서 마지막으로 적었던 편지 내용이 쓰여있다.


얀 후스의 동상 (이미지출처: Michael Fenichel, Tripadvisor)

 


 

루터보다 100년 앞선 동유럽의 종교개혁자 얀 후스


얀 후스가 살던 중세 유럽은 카톨릭 교회가 교회의 재산을 관리하면서 범죄에 대해서도 일반 신도와 달리 면죄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신도들에게 면죄부를 팔며 교회 스스로 장사의 세속화에 빠져들어 있었다. 또한 신도들은 라틴어로만 적혀 있는 성경 내용을 몰라 오직 성직자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얀 후스는 교회가 본연의 기능보다 세속화되어 있는 것을 비판하며 성경을 통한 복음 전파라는 순수한 기능의 교회를 강조했다. 

 

얀 후스는 카를대학의 총장을 역임하며 그동안 라틴어로 되어 있어 성직자들만 이해할 수 있었던 특권의 상징인 성경을 체코어로 번역하고, 종교개혁의 사상적 배경이기도 한 영국의 존 위클리프의 저서 등을 배포하기도 했다. 존 위클리프가 사상적 종교 개혁을 주도했다면 얀 후스는 그러한 사상을 실제 행동으로 나섰다는 점에서 훨씬 적극적인 종교개혁자라 할 수 있다. 

 

개혁의 위험을 느꼈던 카톨릭의 지도자들은 1414년 스위스의 콘스탄츠 종교회의 때 얀 후스를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국왕으로부터 신문안정을 보장받고 참석하였으나 참석하자마자 체포되어 고문끝에 화형을 처해졌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얀 후스와 함께 종교개혁 활동을 해오던 동료인 제롬 역시 처형당했다. 또한 많은 후스 추종자들이 감옥에 갖히게 되었다.

 


얀 후스의 동상 (이미지출처: Expedia)

 


얀 후스가 죽은 뒤에 체코와 중세 유럽은 큰 변화를 거치게 된다


얀 후스 추종자들이 기존의 집권층에 저항하며, 감옥에 갇힌 후스 추종자의 석방을 요구하게 되었고, 이를 거부한 시의원들을 시청 창문 밖으로 던지는 프라하 창문 투척 사건이 일어나며, 10년 이상 기존 카톨릭 세력과 전쟁을 하는 계기가 된다


또한 얀후스의 사상은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에 영향을 줘서 중세 유럽의 종교 개혁 바람을 일으키게 된다.


프라하 창문투척 사건 - 총 2번의 사건이 있었으며, 위 사진은 얀후스 사후 직후가 아닌 150년이 지난 2번째 사건의 그림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30년 전쟁이 촉발되었다 (이미지출처: forum.org, radio.cz)

 


성 니콜라스 성당

광장의 옆으로는 아쉽게 종교개혁을 이룩하지 못하고 떠나간 얀 후스를 위한 추모의 의미인지 후스파의 교회인 성 니콜라스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하얀색 벽면과 푸른색의 둥근 지붕이 바로크 양식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내부는 더욱 화려한 바로크 장식이 교회를 꾸미고 있다. 


성 니콜라스 성당의 외부와 내부 (이미지출처: Prague City Line)


틴 성모 마리아 성당 Chrám Matky Boží před Týnem

성 니콜라스 성당의 대각선 건너편으로는 틴 성모마리아 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틴’은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 주변 건물들을 일컫는 말로서 성모마리아 성당이 매우 많기 때문에틴 성당처럼 지명+성당으로 보통 불리어진다. 


틴 성당의 전경 - 프라하 어디에서도 눈에 띄는 고딕 건축물이다 (이미지출처: prague.eu)



구 시가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14세기 중반부터 16세기 초까지 건축이 진행되었다. 프라하 풍경사진을 찍는다면 이 성당의 2개의 첨탑은 어디에서나 보이는만큼 높고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역시 오랜 기간의 세월 때문인지 건축 후반부로 가면서 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개조되어 화려한 장식과 그림들을 볼 수 있다. 1673년에 설치된 파이프 오르간은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틴 성당의 내부 모습과 파이프오르간 (이미지출처: prague.eu)



성당의 정면 앞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다른 건물로 가려져 있다. (틴 성당은 신교의 교회에 해당되는데, 신교와 구교의 갈등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성당을 들어가려면 성당 앞에 있는 티켓판매대행사인 Via Musica를 통해서 들어가야만 한다. 


성 니콜라스 성당이 유료입장인 반면, 틴 성당은 무료입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 곳의 성당 내부를 보고자 한다면 참고하는게 좋겠다. 


틴 성당의 낮과 밤 (이미지출처: prague.eu)


천문시계

성 니콜라스 성당의 건너편에는 1410년에 설치되어 세계에서 3번째로 오래된 천문시계탑이 있다. 현재까지 작동하는 천문시계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천문시계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틴 성당과 천문시계탑 (이미지출처: Best Places)



위쪽 시계는 천문 눈금판으로 해와 달의 위치, 다양한 천문학적 정보를 표시하고 있다. 너무 자세하고 어려워 별도로 시계보는 방법을 배우지 않으면 이해하기가 힘들다. 간단하게만 소개한다면 맨 가장자리는 고대 체코 시간표시이며, 그 안쪽의 로마자는 하루를 24시간으로 표시한 시계이다. 이외에 낮과 밤, 해뜨는 시간과 해지는 시간 등이 밑바탕에 표시되어 있다. 


천문 시계 양쪽 옆에는 해골과 기타치는 인형, 지팡이 짚은 인형, 거울보는 인형이 있는데, 인간의 탐욕, 욕심, 증오를 뜻한다.


천문시계탑의 정면 (이미지출처: divento.com)



아래쪽 시계는 일반인들이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기 위해 만든 달력으로 한 가운데에는 프라하도시의 마크가 있고, 그 주변 작은 원에는 황도 12궁의 그려져 있다. 그리고 다시 좀더 큰 원에는 각 월마다 해야할 농경활동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자신의 별자리를 알고 있다면 실제로 12방향의 금색 침쪽에 별자리가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천문시계의 위, 아래 부분 (이미지출처: Everystockphoto)



매 시간 정각이 되면 소리가 나며 조각 인형들의 쇼가 진행된다. 우선 해골이 종을 치는데 탐욕과 욕심에 차 있는 인간에게 죽음이 다가 오고 있을 의미한다. 그리고 천문 눈금 위에 두 개의 창문이 열리며 12사도가 이 모습을 지켜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닭 울음소리가 나며 다시 삶이 시작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는 천문시계는 1410년 프라하 시의 요청으로 시계공 미쿨라스와 천문학 교수였던 얀 신델이 합작해서 위쪽 시계를 만들었고 아래쪽은 일반인들이 좀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1490년 하누쉬에 의해서 설치되었다고 한다. 


천문시계가 설치되어 있는 건물 (이미지출처: bydlikemevropou.com)


 

천문시계의 전설


전설이 많은 프라하, 이 천문시계 역시 전설이 흘러나온다. 시계가 완성되고 나서 프라하 시는 여기저기 귀족들에게 이 시계를 자랑했는데, 프라하에 온 귀족들이 이 시계에 반해 시계를 제작한 하누쉬에게 자신의 나라에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프라하 시는 이 대단한 천문시계의 독점을 위해 새벽에 장정을 몰래 보내 하누쉬의 눈을 지져버려 다시는 시계를 만들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우연히 하누쉬의 하인이 시청에서 이 얘기를 듣고 하누쉬에게 사건의 내막을 알려주었는데 하누쉬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만든 시계를 보고 싶다며 시계탑으로 올라간 뒤 더듬거리며 시계의 가장 중요한 부품을 망가뜨렸다고 한다. 이후 시계는 400년 동안 멈추었다고 한다. 

 


동화 같은 전설이 있기 때문에 더 사랑받는 시계탑이 아닌가 싶다. 실제 천문시계는 기계적 노후화로 많이 멈추었고, 그 때마다 오랜 기간 보수작업을 했다. 아마도 보수 작업을 하는 기간 동안 아쉬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설이 아닌가 싶다.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