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를 - 로마시대 기념물 (그리고 고흐의 추억이 깃든 곳) Arles

남프랑스. 보통 남프랑스 하면 니스, 칸느, 마르세유 등을 떠올리는데 이 도시 외에 로마 유적이 남아있고, 고흐의 추억을 느낄 수 있는 도시가 바로 아를 Arles이다. 


아를의 원형 경기장 (이미지 출처: Orangesmile.com)


지중해와 이어지는 론강 하류에 위치한 아를은 위치적인 특징 때문에 기원전 7세기부터 물자 유통의 중심지였으며, 특히 기원전 1세기 로마 제국의 아우구스투스 황제 통치 시절부터 엄청난 발전을 하는데, 이 때 이후 로마 극장을 비롯해 원형 경기장, 지하회랑 등 로마 제국의 특징적인 건축물들이 대거 생겨났으며. 4세기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이곳에 머물렀을 정도로 정치, 문화의 중심지로서 자리잡았었다. 


또한 카톨릭 교인들의 무덤인 알리스캉을 비롯해 11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생 트로핌 대성당이 생기며, 중세 기독교 문화 특징까지도 잘 볼 수 있다. 유네스코에서는 이런 역사적 가치를 높게 여겨 198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다. 


론강을 끼고 왼쪽부터 생 트로핌 성당, 고대극장, 원형극장이 자리잡고 있다 (이미지출처: Travle S Helper)


아를은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유명하지만 그보다 빈센트 반 고흐의 활동했던 지역으로 많은 작품들이 이 아를에서 그려져서 고흐의 추억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 


고대 로마 극장 Théâtre antique d'Arles

로마 극장은 기원전 1세기 말에 세워졌다. 반원형의 관람석은 1만여명을 수용할 수 있었으며, 무대 뒤에는 원주와 조각상으로 장식된 높은 벽이 있었는데,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고, 일부는 아를 고고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지만 극장 답게 지금도 여름이면 영화나 공연 등이 각종 행사가 진행된다. 


고대 로마 극장의 현재 모습과 복원 당시 모습 (이미지출처: Wikimapia)



원형 경기장 Amphithéâtre d'Arles

기원 후 90년에 세워진 원형경기장은 로마의 콜로세움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2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경기장이다. 60개의 2중 아치로 이루어져 있으며, 많이 훼손되었지만 여전히 구조물 자체의 아름다움과 역사적 가치를 갖고 있어 아를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다. 


원형 경기장 (이미지출처: L.Roux,Laini Taylor)


콜로세움과 마찬가지로 검투사들의 대결, 맹수와의 싸움 등 각종 볼거리를 제공했었다. 중세 시대에는 이 원형경기장 안에 예배당 2개와 주택 212채를 지어 요새로서 사용했다고 한다. 이 건물들은 다행히 1825년에 철거되고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 작업이 진행되었다. 지금은 투우 경기장으로 활용된다고 한다. 


복원되기 전 예배당과 주택이 지어져 있던 원형극장 그림과 현재 모습 (이미지출처: Wikipedia)



콘스탄트누스 1세의 목욕탕 Baths of Constantine Arles

4세기에 지어진 이 목욕탕은 벽돌 마루 밑 온돌과 벽 사이로 뜨거운 공기를 보내 한증막과 욕조로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목욕탕보다도 훨씬 큰 규모의 목욕탕으로 온탕, 냉탕, 체육관도 있었으며, 과거에는 거대한 사각형 아치로 덮혀 있었다고 한다. 


목욕탕 내 온돌 모습 (이미지 출처: theparisfeast.com)


이들의 로마 유적들은 8~9세기 이슬람교도와 바이킹족 (유네스코 홈페이지에는 야만족이라고 적혀 있다. 우리나라도 중국입장에서는 오랑캐로 표현되듯이...)의 침략을 받아 많이 파괴되었고, 이후에는 로마의 고대 유적지들처럼 교회와 부자들의 가옥을 위한 재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실제 생 트로핌 성당은 원형 극장의 일부를 떼어내 지어졌다. 


알리스캉 Alyscamps

기독교인들의 공동 묘지인 알리스캉은 묘지 입구에서 생 오노라 성당까지 1.5km 길에 묘들이 줄지어 서 있다. 특히 이곳에는 성 제네스트와 아를의 첫 주교가 안장되면서 유명하게 되었고, 스페인의 산티아고로 가는 성지순례길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순례지가 되었다고 한다. 


알리스캉 (이미지출처: wikimedia)



생 트로핌 성당 Saint Trophime Cathedral

생 트로핌 성당의 전면 모습 (이미지출처: www.csj.org)


12세기 지어진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설된 트로핌 성당은 전체적으로 투박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정면 입구에는 최후의 심판 장면을 묘사하는 조각이 세밀하게 새겨져 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 


정문 위의 장식 조각 (이미지출처: Flickr, wikipedia)


또한 성당 내부는 일체의 장식을 배제하며 소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스테인드 글라스와 예수의 죽음을 묘사한 조각상 등이 종교적 숭고함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북쪽과 동쪽 회랑에는 구약과 신약의 이야기, 성 스테판와 성 요한에 대한 일화가 새겨져 있다. 


성당 내부의 조각과 회랑 모습 (이미지출처: petit-patrimoine.com, wikigogo)



고흐의 작품들 Vincent Van Gogh

세계문화유산과는 관련 없지만 아를을 더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바로 고흐다. 1853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고흐는 20대 후반부터 그림을 시작해서 파리 등의 대도시에서 활동하다가 1888년에 휴양을 위해서 아를에 오게 된다. 아를에 있었던 기간은 15개월이지만 고흐 생애 전 작품의 1/3이 넘는 300여점을 작품을 이곳에서 그리게 되었다. 


포룸 광장의 카페테라스 Café Terrace at Night

맛이 별로 없다는 평이 많은 카페이지만 고흐 때문인지 옛 모습을 간직한 채로 아직 남아 있다. 


이미지출처: Van Gogh Route, worldatlas.com)


병원 정원 The Courtyard of the Hospital in Arles

고흐는 아를의 풍경에 감탄해 고갱을 불러 아를에서 예술공동체를 만들자고 했는데 그래서 2달간 고흐와 고갱은 함께 살며 작품활동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혀 다른 성격차로 둘은 결국 갈라서게 되고, 헤어지던 날 고흐는 면도칼을 들고 고갱을 찾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위협만 하고 집으로 돌아온 고흐는 면도칼로 자신의 왼쪽 귀를 잘라내어 버린다. 그리고 다음날 정신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데, 병원장의 도움으로 이곳에서도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고 한다. 


이미지출처: Van Gogh Route, m.naim.my)


론강변의 별이 빛나는 밤 Starry Night over the Rhone

이미지 출처 (Van Gogh Route, Vincent Van Gogh 웹사이트)


Arena at Arles, 1888

이미지출처: Van Gogh Route, nomadsineurope.com)


Les Alyscamps (‘Leaf Fall’), 1888

이미지출처: Van Gogh Route, 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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