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유 궁전과 정원 - 루이14세 절대왕정을 위한 화려함의 끝판왕 Palace and Park of Versailles

프랑스는 이탈리아 다음으로 세계문화유산이 많은, 무려 38개가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다. 프랑스가 가진 지정학적 위치 상 대륙의 중심에 해당되기 때문에 역사적 사건과 함께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1979년 프랑스에서 가장 먼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베르사유 궁전. 프랑스의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세계적인 건축물이며, 전세계 곳곳에 프랑스 식 정원 조경 양식을 전파시킨 원조이기도 하다. 365일 항상 입구부터 긴 줄을 서야만 들어갈 수 있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기도 한 이곳은 건축물의 압도적인 위상 만큼이나 프랑스혁명을 유발시킨 시발점이기도 한 점에서 프랑스 최초로 등재된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겠다.


베르사유 궁전의 건축

베르사유 궁전의 전경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베르사유 궁전 전에는 현재 파리 루브르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루브르 궁전을 왕궁으로 사용하였다. 하지만 파리의 궁전들은 시내 중심지에 있다보니 시민들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보안 측면에서는 상당히 취약한 곳이었다. 실제 루이14세가 5살때 폭도들이 Palais Royal 궁전에 침입을 한 적도 있었다. 어릴 때부터 이러한 경험을 한 루이14세는 좀더 안전하면서도 왕정을 위협할 수 있는 귀족, 부르주아 계층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는 궁전이 필요했고, 이런 사정에 가장 적합한 곳으로 부친의 사냥터로 사용하던 베르사유 지역에 왕궁을 짓게 된다. 


"유사 이래 가장 크고 가장 화려한 궁전을 지어라"라는 명령에 따라 프랑스 내에 많은 건축가, 예술가, 조경가들이 동원되고, 노동자들도 수만명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궁전의 건축 설계는 르보 Le Veau가, 정원은 르 노트로 Le Notre가, 궁전의 인테리어는 샤를르 르 브룅 Charle Le Brun이 담당하며, 1662년부터 1715년까지 50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베르사유 궁전은 루이14세의 절대왕권을 과시하기 위해서 지어졌기 때문에 주거용도로는 매우 불편했다고 한다. 내부가 거의 화려한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개방적인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겨울에는 난방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베르사유 궁전의 투어

베르사유 궁전과 정원의 가이드맵 (이미지출처: Hermanhissjewelers)


베르사유 궁전의 투어는 메인게이트를 지나 루이 14세의 기마상이 있는 넓은 뜰에서 기나긴 줄을 선 뒤에야 가능하다. 베르사유 궁전의 가이드맵을 살펴보면 크게 1. 궁전 건물, 2. 정원, 3. Trianon궁전과 마리 앙트와네트 촌락의 3부분으로 구분된다. 


1. 베르사유 궁전 

베르사유궁전의 드론 촬영 이미지 (이미지출처: TELEPILOTE SAS)


베르사유 궁전은 2층 규모의 건물로서 왼쪽 건물, 중앙 건물, 오른쪽 건물의 3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보통 왼쪽 건물 2층인 전쟁미술관에서 시작해서 중앙 건물 2층의 왕비의 아파트, 거울의 방, 왕의 아파트를 보고, 마지막으로 오른쪽 건물의 1층 왕실예배당 순으로 투어를 하게 된다. 



전쟁미술관 The Gallery of Great Battles


전쟁 미술관의 내부 모습 (이미지출처: 베르사유궁전 공식 웹사이트)


원래 왕자들이 지낼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졌지만 1830년 루이-필리페 왕의 제안으로 120여 미터의 전쟁미술관으로 변모되었다. 496년 클로비스에 의한 최초 프랑스 왕국의 건국배경이 된 톨비악 전투에서의 승리부터 1809년 나폴레옹 황제의 오스트리아와의 전투까지 다양한 프랑스 전쟁과 관련된 그림이 전시되어 있으며, 이외에 프랑스의 역대 원수급 장군과 왕족 출신의 장군들의 흉상들도 전시되어 있다. 



왕비의 아파트 Queen's Apartment


이곳은 나폴레옹의 방, 경호원의 방, 만찬 전실, 귀족의 방, 왕비의 침실, 평화의 방 등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왕의 아파트와 달리 아이보리색의 밝은 분위기를 가진 곳이다. 


왕비의 아파트 내부 모습 (이미지출처: 베르사유궁전 공식 웹사이트)



왕비의 침실에는 루이 14세의 부인 도트리슈 왕비, 루이 15세의 부인 레슈친스카 왕비, 그리고 루이 16세의 부인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기거했으며 지금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용했던 모습 그대로 현재 전시되어 있다. 보선 보관함 옆에는 작은 비밀의 문이 있어 프랑스혁명의 군중들이 베르사유 궁전을 습격했을 때 이 문으로 도망을 갔다고 한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은 나폴레옹의 방이다.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의 대관식 장면이 있기 때문에 나폴레옹의 방으로 이름이 불리어지고 있다. 다비드는 나폴레옹의 대관식 장면 그림을 2점 그렸는데 다른 한 작품은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과 유일하게 다른 부분이 있다면 나폴레옹 막내 여동생 폴린의 드레스 색깔인데, 루브르에는 흰색으로 되어 있지만 베르사유에는 핑크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다비드의 나폴레옹 황제 대관식, 들러리 핑크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폴린


다비드의 폴린에 대한 사랑은 나폴레옹에 의해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이 때부터 사랑은 핑크빛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나폴레옹의 방은 가장 인기 있는 곳 중에 하나여서 대관식 장면 사진을 찍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사진보다는 명작을 바라보며, 스스로 왕관을 쓴 나폴레옹과 씁씁할 표정으로 이를 바라보는 교황과 주교들, 이를 그리고 있는 다비드의 모습을 한번 살펴보는 게 어떨까 싶다.



거울의 방 The Hall of Mirrors


길이 73m, 너비 10.4m, 높이 13m로서 방이라기보다는 큰 거실이라 할 수 있다. 정원을 향한 17개의 창문과 반대편 벽에 있는 17개의 거울이 정확히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크리스털 샹들리에 등 화려한 장식품들로 가득차 있다. 현재 우리에게는 평범한 거울이겠지만 이 당시 만들 수 있는 최대 크기의 거울로 제작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신비롭게 다가왔겠는가... 특히나 화려하게 꾸며진 거울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거울의 방 내부 모습 (이미지출처: 베르사유궁전 공식 웹사이트)



이 곳의 천장은 루이14세의 업적을 묘사하는 그림으로 이루어졌는데, 태양왕을 우러러 보고 다른 인물들보다 부각될 수 있게 그려져 있다고 한다. 실제로 보지 않으면 확인하기 어려울 듯하다. 


거울의 방은 주로 결혼식 같은 궁정 행사, 외국 귀빈 방문 행사 등이 진행되었으며, 보불 전쟁(프로이센과 프랑스의 전쟁, 1871)에서 승리한 프로이센의 국왕 빌헬름1세가 이곳에서 독일제국 황제로 즉위식을 거행하였고, 1차세계대전 이후에는 독일 패망과 배상에 대한 베르사유 조약이 이곳에서 체결되었다. 


보불 전쟁 승리 후 빌헬름 1세의 황제즉위식과 베르사유조약 체결 장면



거울의 방 양쪽으로는 각각 평화의 방과 전쟁의 방이 있어 대비적인 느낌을 준다.


평화의 방과 전쟁의 방 내부 이미지 (이미지출처: 베르사유궁전 공식 웹사이트)



왕의 아파트 King's Apartments


베르사유 궁전에는 지방 귀족이 약 6천명 가량 머물렀다고 한다. 회의 때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앉는 귀족,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는 귀족, 서있는 귀족 등 국왕과의 관계를 일부러 보여줌으로써 국왕에게 좀더 충성하게 만들고, 지방 귀족들이 상대적으로 본인들의 영지에는 소홀히 만들게 하는 목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귀족들이 머물러야 하기에 상당히 많은 방들이 필요했다. 왕의 아파트에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이름을 붙여진 방들이 있다. 사실 이 곳의 방들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으로 행성들이 돈다는 지동설에 따라 태양왕인 루이14세를 중심으로 행성인 귀족들이 존재한다는 메타포를 갖고 있다. 


이 곳에서 단연 눈에 띄는 곳은 헤라클레스의 방 The Hercules Room이다. 

왕실 예배당이 완공되기 전까지 왕실 예배당으로 사용되었으며, 결혼식 장소로도 쓰여 역시 화려한 면모를 볼 수 있다. 헤라클레스의 방이라 이름이 붙인 이유는 이곳의 천장에 1736년에 프랑스와 르므완느가 그린 세계에서 가장 큰 천장화인 헤라클레스의 결혼식이 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의 크기는 넓이가 무려 314m²에 달한다. 2년에 걸쳐 완성했다는데 이 작품을 완성한 후에 르므완느는 자살을 했다고 한다. 


헤라클레스의 방 내부 이미지와 천장화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bencito_traveller)



헬라클레스의 방에는 이 작품보다 더 뛰어난 걸작이 있는데 바로 이탈리아의 화가인 파올로 베로네세가 그린 "시몬 집에서의 만찬"이라는 작품이다. 티치아노의 영향을 받아 대비가 극명한 화려한 색채의 그림을 주로 그렸다. 사실 화가의 명성도 있지만 헤라클레스의 결혼식보다 200년이나 앞선 그림이기에 훨씬 중요한 작품이다. 


파올로 베로네세의 '시몬 집에서의 만찬'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헤라클레스의 방을 지나면 풍요의 방 The Hall of Plenty이 나온다. 이곳의 천장화의 주인공은 바로 풍요의 여신 아르테미스이기에 이름이 풍요의 방으로 붙여져 있다. 이곳은 행사나 만찬 등이 있을 경우에 각 음식과 과일, 술을 풍성하게 차려놓았던 곳이다. 이 외에도 The Venus Room, The Diana Room, The Mars Room, The Mercury Room 등이 있는데 이곳의 방들에 대한 설명은 프랑스 내 투어여행사인 알고가자 홈페이지에 잘 정리되어 있다. 


http://algogaza.com/item/versailles/



시계방향으로 풍요의 방, 비너스의 방, 마스의 방, 다이아나의 방 (이미지출처: 베르사유궁전 공식 웹사이트)



왕실예배당 The Royal Chapel


중앙 건물을 빠져나와 오른쪽 건물을 넘어가면 왕실 예배당이 나온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다른 건물과 달리 바로크양식으로 지어졌으며, 흰 대리석과 황금빛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곳이다. 1711년에 만들어진 파이프오르간이 멋지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왕실 예배당 천장 이미지와 파이프오르간 (이미지출처: 베르사유궁전 공식 웹사이트)



프랑스 역사 미술관 The Museum of The History of France


예배당을 지나면 프랑스 역사미술관이 나오는데, 십자군관, 제국관, 아프리카/이탈리아관, 혁명관, 19세기관 등이 있으며, 프랑스의 역사에 대해 다양한 전시를 해놓고 있다.  


프랑스 역사미술관 내부 이미지와 그림들 (이미지출처: 베르사유궁전 공식 웹사이트)



궁중 오페라 극장 The Royal Opera House


건물의 맨 오른쪽에 위치한 궁중 오페라 극장은 가브리엘의 설계에 따라 1768년 착공되어 1770년 완공되으며, 최초의 궁중 오페라 극장으로 7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루이 16세와 마리앙투아네트가 결혼한 장소로서 유명하며, 1871~1875년까지는 국회로 사용되기도 했다. 


시계방향으로 궁중 오페라 극장의 내부 모습과 좌석을 움직일 수 있는 기계실, 국회 모습, 만찬 행사 모습 (이미지출처: 베르사유궁전 공식 웹사이트)


2. 베르사유 정원

베르사유 정원은 예전 사냥터로서 루이14세 이전에도 베르사유 정원이 존재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루이14세가 당시 정원왕이라 불리는 르 노트르로 하여금 다시 설계하도록 하였으며, 르 노트르는 루이14세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해 화려하면서도 궁전의 건축과 어울리면서 루이14세를 돋보일 수 있도록 정원을 만들어나갔다. 


베르사유 정원 모습 (이미지출처: Apollon Montparnasse)


절대왕정의 탄생(임승휘 저)에 따르면 베르사유 정원의 존재 이유는 매우 명확하다. 

1662년부터 르 노트르는 이솝우화와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등장하는 동물과 신상들, 그리고 수많은 분수와 폭포, 이국적인 식물들로 화려하게 장식된 정원을 설계했다. 이 정원의 그 어떤 것도 아무런 이유 없이 존재하지는 않았다. 정원이 존재하는 이유는 국왕의 권위에 대한 메타포였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규모, 정확히 대칭 구조의 정원는 그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모습이었을 것이다. 완성까지 약 40년이 걸렸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특히 지금은 전기모터를 통해 물을 끌어오지만 당시에는 수로와 인력을 이용해 분수의 물을 끌어올렸으니 유지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물화단 Water Parterre


궁전 바로 앞에 있으며, 처음에는 직사각형의 대칭 모습이었다가 여러번 변형된 후에 1685년에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물 화단의 가장 자리에는 4개의 청동 조각상들이 있는데 각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강을 상징한다고 한다. 


물화단 모습 (이미지출처: 베르사유궁전 공식 웹사이트)



레토(라토나) 분수 Latona Fountain


아폴론의 어머니 레토를 주인공으로 한 분수다. 이 분수는 오비디우스의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영감을 받았다는데 내용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제우스의 사랑을 받아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쌍둥이를 임신한 레토. 하지만 제우스 헤라가 이를 듣고 분노하며, 그리스 본토나 섬 어디에서도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한다. 결국 레토는 헤라를 피해 바다 위 떠다니는 섬인 델로스에서 쌍둥이를 낳게 된다. 아이를 낳은 뒤에도 헤라의 괴롭힘은 계속되었는데,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던 레토는 리키아 지방으로 가게되고 지친 몸과 타는 목마름으로 샘물을 마시려는 순간, 이 지역 농부들이 샘물을 흙탕물로 만들어 마시지 못하게 한다.  

레토는 농부들에게 이러한 모욕을 받자 하늘에 이들이 영원히 이 흙탕물을 떠나지 못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빈다. 그러자 제우스가 이를 듣고 벌을 내려 농부들을 개구리, 도마뱀 등으로 변하게 하였다. 


레토 분수 (이미지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centerline717/4662268840)



왕의 거리 The Royal Avenue


레토 분수를 지나면 335미터, 폭 40m의 길게 뻗어있는 잔디밭을 볼 수 있다. 그린 카페트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양쪽으로 12개의 조각상과 12개의 꽃병이 대칭을 이루며 세워져 있다. 


왕의 거리 이미지 (이미지출처: 베르사유궁전 공식 웹사이트)



아폴론 분수 Apollo Fountain


태양신 아폴론을 형상화한 분수다. 물론 태양신 아폴론은 루이14세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여름에는 주말마다 분수 축제를 한다고 하니 베르세유 궁전의 축제 일정을 꼭 확인해보고 가는게 좋다.  


아폴론 분수 이미지와 축제 장면 (이미지출처: 베르사유궁전 공식 웹사이트)




운하 The Canal


정원 내에는 길이 1,650m의 대운하와 1,070m의 소운하가 십자가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인근의 연못에서 물을 끌어들이고, 센느 강에서 수로와 양수기를 통해 물을 끌어와 운하를 채웠다고 한다. 3일간의 대향연때는 이곳에서 모의 해전을 벌였다니 정말 절대왕권의 정수인 듯하다. 


베르사유 운하 모습 (이미지출처: 베르사유궁전 공식 웹사이트)


3. 트리아농과 마리 앙트와네트의 촌락 Trianon & The Queen's Hamlet

그랑 트리아농 궁 The Grand Trianon


트리아농Trianon은 작지만 화려한 빌라라는 뜻으로 베르사유 내에서 베르사유 궁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아담한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랑 트리아농 궁전은 루이 14세의 별궁으로 애인인 매트농 부인을 위해 지었다고 한다. 기둥식 회랑을 배치한 단층 건물로 장미빛 대리석이 사용되어 대리석 트리아농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매우 섬세하며 대리석 자체의 화려함이 묻어나오지만 별궁으로서 베르사유 궁전보다는 덜 화려하며, 좀더 푸근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도 거울의 방이 있으나 베르사유 궁전의 겨울의 방과 한번 비교해서 볼만한다. 루이16세와 마리앙투아네트도 이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데, 프랑스 대혁명을 거치며 방치되었다가 나폴레옹 시기에 다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랑 트리아농의 내외부 모습 (이미지출처: 베르사유궁전 공식 웹사이트)



쁘띠 트리아농 궁 The Petit Trianon


루이 15세의 별궁으로 애인 퐁파두르 부인을 위해서 지었다. 하지만 건물이 완공되기 전에 퐁파두르 부인이 사망해서 실제 사용은 루이 15세의 마지막 애인인 뒤바리 부인이 했다고 한다. 궁전은 로코코 양식에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변해가는 건축 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으며, 고풍스런 가구, 장식품, 가구 등이 잘 배치되어 이 당시 궁중 생활 상을 잘 살펴볼 수 있다. 


쁘띠 트리아농 (이미지출처: 베르사유궁전 공식 웹사이트)



마리 앙투아네트의 촌락 The Queen's Hamlet


18세기 귀족들 사이에서 자신의 영지에 촌락을 짓고 시골 체험하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당시 마리 앙투안네트 역시 이러한 유행에 심취되어 베르사유 궁전 내에 농촌 체험 마을을 조성했다. 호수 주변으로 10여 채의 농가를 지었고, 마리앙트와네트는 이곳에서 재미삼아 농사, 낚시, 소 젖 짜기 등을 했었다고 한다. 


화려하기 그지 없는 베르사유 궁전에 비해 작고 소박하며 아늑해서 왕가 사람들이 궁중 생활에서 벗어나 일탈적 생활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고 한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촌락 (이미지출처: 베르사유궁전 공식 웹사이트)


지금까지 유래가 없었던 화려함과 큰 규모를 자랑하는 베르사유 궁전과 정원. 

궁전과 정원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세금을 추징할 수 밖에 었었고, 이것은 결국 세계사에 가장 중요한 시민혁명인 프랑스혁명을 유발시키는 계기가 된다. 프랑스혁명 이후 베르사유 정원과 숲은 1/10규모로 줄어들었다고 궁전과 트리아농 역시 일부 훼손되었다고 한다. 과도한 국왕의 사치는 결국 폐망으로 이끈다는 또다른 사례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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